88만원 세대의 애가(哀歌)에 대한 변명 88만원 세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88만원 세대의 애가(哀歌)에 달린 댓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아쉽습니다..

전편의 글을 공감하며 보았습니다.

88만원세대의 일원으로 남이야기가 아니네요.

이번 글은 좀 아쉽습니다.

제시하신 내용이 중요한 바탕이긴 하지만

해결책은 아니네요.

전 실체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8만원세대 스스로 제3의길을 찾고 실체를 내고

같은 세대를 서로서로 견인해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부터 내 대답 ====



 

말씀하신 전편의 글은 아마 ‘당신은 무능하지 않습니다’인 것같은데, 그건 제가 쓴 글이 아니라 김강기명님의 기사입니다. ^^;


제 글에 대해선 당연히 그런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 스스로도 언급했듯이 구조적 접근을 우선시 하는 분들에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글이지요.

때문에 저 역시도 저의 제안이 실질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다만 몇 가지 변명을 하자면...


1.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실질적인 해결책, 혹은 해결구조를 결정하고 시도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88만원세대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대화, 연대가 필요하겠지요.

당연히 일어나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제 주변의 친구, 후배들과 함께 그 일을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담론을 형성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취업문제로 고통 받고, 불확실한 미래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심한 경우 당장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람도 있지요.

저의 첫 번째 제안은 당면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갖자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단순한 삶(Simple Life)’에서 찾았구요.

이 말이 자칫하면 체제에 부역하자는 선동으로 보일수 있지만 말입니다. ㅡㅡ;;


2. 선동적 대안제시가 지닌 구조적 한계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386세대와 88만원세대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세대간 대결 구도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동감되는 부분이 많으며 여러모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할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전반을 지배하던 냉철한 시선은 말미에서 갑작스런 반전했습니다.

답답한 현실을 타계하는 최선의 해결책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라구요.

좀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만이 이 사태의 해결책이라는 말은, 해결책이 없다는 것과 거의 같은 뜻이 아니겠습니까?

무슨 수로 우리가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성경이 반복적으로 말하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 영성의 본령으로 돌아가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말을 던진 것입니다.

물론 구체적 실천사항 여부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겠지만요.


3. 위기 상황에 대해, 성경의 내러티브가 취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기사에서는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실제로 캠퍼스에서 후배들과 대화하던 자리에서 가장 중심에 놓였던 내용은 『88만원 세대』의 책 내용도 아니었고, 대안 제시 부분도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전반적인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은 그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시고 처방하시는지에 관해서였습니다.

사정상 그 이야기를 몽땅 다시 하기는 힘들 것 같고...

Alan J. Roxburgh의 THE SKY IS FALLING!?! 의 표현을 빌려 간단하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영어실력이 짧아서 부득이하게 의역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변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몇몇 부분을 수정하고 보수함으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반응이며, 두 번째는 더욱 진보적으로 미래를 향해 새롭게 판을 짜려는 반응이다. 그러나 성경이 변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traditional도 contemporary도 아닌 변화 속에 머물러 하나님의 계획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부연한다면, 저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니 그대로 체념한 채 살자는 주장에는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할진 모르겠는데, 저는 영성적 현실주의(Spiritual Realism)를 꿈꾸며 살아내려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믿음으로 이겨내자는 식의 신앙적 희망고문을 멈추기를 바라기에, 후배들에게 ‘이제는 애가(哀歌)를 부르자!’고 제안했던 거지요.

미약하게 시작했지만, 이제부턴 더 많이 이런 이야기를 확산시켜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의 이십대가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 좀 더 정직하게 까발리는 일과 동시에, 낙관적 승리주의에 고문당하고 있는 공동체의 모양을 바꾸어가는게 그 시작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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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烏有 2007/10/27 16:05 # 답글

    체념하는순간,멸망을 기다리는것만이 남겠지요.
    싸움이 필요한 시대가 이시대가 아닌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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