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의 애가(哀歌) 88만원 세대

뉴스앤조이 기고
 

23일(火)에 캠퍼스에서 후배들과 함께 말씀 나눌 기회를 허락받았습니다.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는 제가 요즘 고민하고 품는 주제에 대해 말하고,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의 양식이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모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시험 기간이라 다들 피곤에 찌든 얼굴로 모임을 찾아왔지만, 심각한 현실의 무게를 토로하는 못난 선배 앞에서 후배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모임 장소였던 강의실에서 시험을 친다고 해서 중간에 장소를 옮겼지만, 현실만 듣고 돌아서기엔 가슴이 너무 답답했는지 마지막까지 후배들은 함께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1, 2부로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였는데 1부는 『88만원 세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저와 제 주변의 실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2부는 예레미야를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보며, 세대담론이 다루는 참담한 내용이 신앙 공동체에까지 침투한 막막한 현실 앞에서 20대 크리스천은 어떤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나름으로 선택한 몇 가지 원칙을 참고삼아 제안했지요. 구조적인 접근을 중요시하는 분들에게는 영 못마땅한 제안으로 들릴 거란 염려도 됩니다.


책 내용이야 다른 분들이 쓰신 글(딴지일보, 뉴스앤조이)을 참조하시면 될 테니 생략하고, 2부 말미에 후배들에게 했던 네 가지 제안과 결어(結語)를 이 자리에 옮겨봅니다.



 

88만원 세대가 88만원 세대에게 던지는 제안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던 예레미야의 선포가 계속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졸지에 제국의 유배자로 전락한 그들의 기막힌 심정은 아마도 오늘 우리 88만원 세대가 느끼는 참담함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에서의 유배생활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성전을 자랑하고, 구원의 확신에 매몰되어 있었으며, 종교행위를 지속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율법과 지혜를 소유하였다고 자부였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서 유배자 공동체로 살아가며 그들은 성전 중심의 삶이 아닌 흩어지는 삶(diaspora)을 체득하였고, 정주(定住)와 자랑의 신앙은 순례와 애가의 신앙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유배생활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본디 의도하셨던 모습대로 다듬어 가는 과정(course)이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저주(curse)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믿음의 본령을 찾아가는 순례의 과정(course)이었던 것입니다.


88만원 세대의 한 사람으로, 저는 우리가 이 현실을 저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 95%가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아등바등 친구와 이웃들을 밟고 올라서는 5%에 진입하려고 노력하기보다 95% 속에서 함께 애통하며 함께 즐거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던 바울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적은 수입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누리는 삶이란, 구호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자고 굳게 결심한다고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현실적으로 20대가 단결하여 새로운 상황을 열어가거나, 윗세대가 자신들의 몫을 나눠줌으로 더불어 살아갈 길을 연다는 것 역시 불가능 해보입니다. 도대체 출구 없는 현실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기독교 영성의 핵심으로 돌아가는 데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예수와 그 제자들의 삶으로 돌아가는 데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95%의 사회적 약자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감으로,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부터 ‘88만원 세대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열매 맺는 변화는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영역에 속합니다.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매뉴얼처럼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경험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약간의 참고라도 되시라고 몇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에 대해서는 마이클 윌킨스가 쓴 『그분의 형상대로』를 권합니다. 영적인 훈련(Spiritual Discipline)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그분과 동행함으로 내 영혼이 그분의 영혼처럼, 그분의 형상대로 형성(formation)되어 가는 과정(Spiritual Formation)을 안내하는 책입니다. 제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Spiritual Formation에 관해 다루는 책 중 (한글로 출판된 것에 한정해) 가장 현실적이고 원칙적인 안내를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역시 매뉴얼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몇 가지 분야의 변혁을 위해 노력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소비의 변혁입니다.

Well-being Life를 말하며 교묘히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 속에서 자발적으로 Simple Life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대중매체와 시대의 논리가 주장하는 수준의 소비생활을 하려면 88만원 벌어서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짱돌을 들건, 바리케이트를 치건 일단 기본적인 물적 토대를 확보하지 않으면 투쟁도 불가능합니다. 우선은 88만원으로도 생존할 수 있는 단순한 삶, 절제된 소비 생활을 연습해 갑시다.


둘째는 학습의 변혁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의 대부분은 체제에 진입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취직을 위해 토익을 공부하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성찰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고민할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문학과 사회학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많은 책을 읽지 못해도 좋습니다. 한 권의 책이라도 읽읍시다. 단, 함께 읽읍시다. 공동체에서 읽고 나눌 때 생각의 폭은 몇 배로 확장됩니다. 확장된 사고로 우리를 억압하는 체제의 현실을 바로 보도록 합시다.


셋째는 공동체의 변혁입니다.

공동체의 모양을 바꾸어 갑시다. 은연중에 암세포처럼 신앙공동체에 스며든 승리지상주의를 과감히 내려놓읍시다. 복음으로 이 땅을 정복해가자는 찬양,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과 더불어 승리하자는 승리자의 신앙고백도 나름대로 진정성이 있고 의미 있는 것일 테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제 그것을 내려놓읍시다. 유배자로, 포로로 이 땅의 참혹한 현실을 살아가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기독교 영성의 본령으로 돌아갑시다.


넷째는 종교 양식의 변혁입니다.

성전 중심으로 모이는 종교 양식에서 벗어나 보냄 받은 삶(Missional Life)을 살아갑시다. 교회에서 하듯 캠퍼스에서도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 듣는 것에 매몰되지 맙시다. 일주일에 다함께 모이는 이 자리에서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며 알바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해나가는 일상의 영성(Everyday Spirituality)을 종교 양식의 중심에 둡시다.



결어(結語)_ 애가(哀歌)를 노래하자.


요즘 주로 불리어지는 찬양곡은 대부분 ‘기쁨’, ‘평안’, ‘승리’ 등의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사는 현실을 볼 때 지금 우리의 입에서 나와야 할 노래는 기쁨의 노래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노력하면 너도 5%에 들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고문’을 하는 시대에 부르는 기쁨의 노래는, 어쩌면 술이나 마약 처럼 정상적인 판단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희망고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가슴을 치며 부르는 애가(哀歌), 간절한 탄원(歎願)의 노래를 불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동방 정교회의 전통에서 비롯되어 오랜 시간 이어져온 ‘예수기도(Jesus Prayer)’를 해야 할 때입니다. 화려한 수식어 없이 그저 ‘주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kyrie eleison).’라고 기도하며 깨어진 마음을 쏟아놓을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철저히 절망함으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절망적인 한계상황을 겸손히 인정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 것이야 말로 기독교 전통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온 민족이 이집트 제국의 노예로 가혹한 착취를 당하며, 탄식과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들렸던 시대에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끊임없이 이민족의 압제와 약탈 속에서 신음하였던 시대에 사사기가 기록되었으며,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정치적 자주권을 상실했던 시대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핍박 받을 때 기록되었던 사도행전 역시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는 동트기 직전이라는 사실을요. 어둠이 짙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웠다는 것을요.


유배자 공동체로 살아가며 보냄 받은 자로 단출하게 살아가는 삶을 연습하는 것은 어두운 역사 속에서 첫 새벽을 기다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에서 고기 잡으며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삼년 동안 예수라는 스승을 만나 방랑 생활을 할 때, 가족․친지들은 당연히 그들의 선택에 어이없어하고 혹은 비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동행한 삼년여의 유랑생활로 인해 그들은 이웃을 위해, 그리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앞의 승리와 성공을 포기하고 영원히 승리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단순히 내가 영원한 승리자가 되는 것, 내가 하나님께 칭찬 받는 사람 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유배자 생활을 통해 Simple Life를 체득한 공동체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 95%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88만원 세대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출구 없는 현실에서 출구가 되어주는 보냄 받은 공동체가 되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TOEICer가 되어 ETS(토익 주최기관)의 재정을 지탱하는데 일익을 감당하고, 공무원 학원의 배를 불려주면서 정작 자신은 힘들게 살아가는 캠퍼스의 이웃들에게 우리의 삶과 우리 공동체의 모습이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출구없는 현실에서 행복을 원천봉쇄당한 우리 학우들에게 희망의 공동체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로 은혜 입었으니, 이제 우리도 은혜를 기다리는 학우들에게 은혜 되어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from blessed to be blessing). 하지만 잊지 말고 기억합시다. 이것은 감정적 선동이나 열정적 구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오히려 냉철히 현실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곡하며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구할 때 이러한 삶이 시작됨을 기억합시다. 이제 우리 애가(哀歌)를 노래합시다.


(071024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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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만원 세대의 애가(哀歌)에 대한 변명 2007/10/27 15:47 #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88만원 세대의 애가(哀歌)에 달린 댓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 아쉽습니다.. 전편의 글을 공감하며 보았습니다. 88만원세대의 일원으로 남이야기가 아니네요. 이번 글은 좀 아쉽습니다. 제시하신 내용이 중요한 바탕이긴 하지만 해결책은 아니네요. 전 실체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8만원세대 스스로 제3의길을 찾고 실체를 내고 같은 세대를 서로서로 견인해 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고민하고 있습니다. ==== 여......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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