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에 대한 이야기에 귀기울일 가치가 넘쳤다.
| 기독교 영성의 새 바람 '관상 기도'를 아시나요 | ||||||||||||
| CBS라디오 <크리스천 저널>에 출연한 박운양 기자회원의 인터뷰 내용 전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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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입니다. (최초로 우리 청파성가대 게시판에 올립니다.) 그런데 방송에는 전문이 거의 삼분의 일도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기도 합니다. 확실히 말은 글보다 힘이 약하고 글은 그림보다 힘이 약합니다. ▶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밀레니엄이 시작되었던 2000년 봄에 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신학대학교인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는 무엇보다 다양한 신학을 공부하고 대안을 모색하기에 적합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관상기도에 어렵지 않게 입문하게 된 것도 감신의 학풍 때문이었습니다. 그 학교는 동양문화와 한국의 토착화신학을 정통으로 공부할 수 있는 아주 드믄 곳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했습니다. 연극동아리 창조극회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한반도 예수운동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8일에 있었던 ‘ 한국교회 이대로 가다가는 망한다’ 라는 교회개혁의 대안을 주제로 한 공개논쟁형식의 행사를 기획하고 사회를 보기도 했습니다. 1996년 창립된 순수미술 동호회 'Space and color'에서 11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는 인사동에서 창립 10주년 전시회에 종교 간의 대화를 주제로 작품을 출품합니다. 더불어 싸이월드 클럽에 있는 ‘인클’이라는 인물그리기 동호회에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지향하며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회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살리는 사람들'이라는 싸이월드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통일부와 국민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는 통일 서포터즈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영등포역과 서울역에서 노숙인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5월 15일 개교하게 되는 국내 최초의 친 생태적인 야학인 녹색살림야간학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많은 크리스천은 ‘부르짖는 기도’에 익숙해 있다고 하는데요, 박운양 선생은 어떻습니까? 저 역시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머니 고 장 영애 권사님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습니다. 모교회인 오천감리교회에서 어머님은 ‘기도의 대가라고 인정받는 분이셨습니다. 어머님의 기도스타일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드리고 가능하면 오랜 시간을 소리 내어 중보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이런 틀을 가진 기도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어머니와 함께 드리면 ‘누가 늦게까지 남아서 기도하는가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강대에 입학했던 89년 8월 21일 새벽 4시경에 수원 이목리에 있는 산 정상에서 이런 방식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한 달 동안 해오다가 강렬한 신앙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제는 그 체험이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길면 한 달, 잘해야 몇 주면 싸늘하게 신앙의 열정이 식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렇게 냄비처럼 끓어올랐다가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뚝배기처럼 은근하고 오래가는 신앙의 열정을 유지할 수 없을까’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다가 기도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언제입니까? 특별히 언제라고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두 딸을 키우면서 삶을 바라보게 되는 눈이 달라지게 됐고 이에 따라 기도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오버랩 시키면서 바라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 비춰지는 이기적이고 계속해서 요구만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혹시 나도 하나님께 저런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며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왜 그런 생각이 드셨던 겁니까? 2004년 여름 청파감리교회의 전교인 여름수련회에서 본격적으로 관상기도를 체험하게 됩니다. 제 삶의 멘토이기도 한 김기석 담임 목사님께서 평소에도 강력하게 관상기도를 강조하셨던 터였습니다. 이 수련회를 계기로 4일 동안 집중적으로 관상기도 훈련을 받으면서 신앙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도 단전호흡이나 기수련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없지는 않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이런 인식들을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앞으로 신앙생활에 초점은 관상기도일 수밖에 없다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청파감리교회는 새벽기도회를 6시에 합니다. 저는 5시경에 눈을 뜨면 지난밤에 꾼 꿈을 기억나는 대로 기록합니다. 그리고 차를 한잔 마시고 관상기도에 들어갑니다. 약 30분정도 합니다. 그리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합니다. 물론 몸이 피곤하면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만 늦게 일어나도 적어도 30분이상은 꼭 관상기도를 합니다. ▶ ‘관상 기도’란 게 어떤 겁니까? 관상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언어. 상상. 표상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히 사귀는 마음의 기도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어떤 가림도 없이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알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전적인 침묵을 요구하는데 언어 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의지까지도 침묵을 요구합니다. 관상기도는 나를 철저히 비우고 하나님이 알아서 채울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자기가 아닌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활동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명령이 떨어질 지 항상 준비하는 자세이고 명령이 떨어지면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관상기도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간디의 통찰처럼 ‘세상을 구원하려는 행동이 없는 기도는 정신적인 사치일 뿐이다’라는 관점에 동의하게 됩니다. 관상기도를 드리는 이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관계를 그 틀 안에서 성찰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관상기도는 영성생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개인적으로 ‘관상 기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크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의 평정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신이 통일되거나 마음이 온전히 하나 될 때까지 그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의 평정을 이루려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모든 긴장과 걱정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보아야 합니다.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정신이 산만해지면 그것을 다만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맡겨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풀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이란 내버리는 것이며 풀어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요의 단계입니다. 마음의 평정을 통해 마음속의 온갖 방해 요인들과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들과 의지를 박약하게 하는 것들을 모두 내버리기 때문에 내적으로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중심에는 요동하지 아니하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고요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바짝 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방심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상태가 됩니다.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마음의 응시가 있는데 그것은 때때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뜨거운 임재를 체험하며 주님의 가까이 계심과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영적인 신비 체험으로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일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단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 놓고 받아드릴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만할지 모르지만 전 하루 종일 관상기도를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할 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고 들을 때도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합니다. 글을 쓸 때도 제 힘으로 머리를 쥐어 짜내서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쓰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특별히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통해서 많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잠깐 이 렉치오 디비나를 설명 드리자면 베네딕트 수도원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된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독서식 명상기도법을 말합니다. 독서를 통해서 읽는 이와 본문이 상호 작용하면서 본문이 개인의 영혼과 개인의 상황으로 파고들게 됩니다. 그 결과로서 영혼은 영적인 가치 혹은 영적인 세계와의 접촉을 경험하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렉치오 디비나는 실용주의적인 목적 즉 설교준비나 가르침의 목적으로 책을 읽는 것과도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독서방법을 소개하면 △ 은밀한 장소에서 선택된 본문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 그리고 본문에 대해서 생각하고 명상하고 그 안에 머뭅니다. △ ‘읽기’는 단순한 반복으로 출발하여 점점 그 내용을 반추하고 마음의 눈으로 성서의 장면을 영상화시킵니다. 저는 이 방법을 두 딸의 성경공부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학교를 보면 너무나 많은 자극으로 어린이들을 부교재를 이용해서 시청각을 동원해서 교육합니다. 물론 이것도 어린이들에게는 중요한 교육입니다. 하지만 아주 적은 말을 통해서도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교육도 이 렉치오 디비나를 적용하면 가능하다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 거룩한 독서가 진행되는 동안 잡념이 반드시 떠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이미 읽은 본문에 초점을 맞추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본문으로 거듭 돌아갑니다. △ 특히 주의할 것은 독서를 할 때 비평적이고 분석적인 기능은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 내면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졌으면 천천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선택한 말씀을 읽습니다. 읽다가 단어나 문장에 머물러 그 깊은 의미를 묵상하면서 머물러 있습니다. 제가 렉치오 디비나를 했던 책들은 기본적으로 성서가 있습니다. 전 이 렉치오 디바나를 통해서 성서를 읽으면서 많은 소중한 체험들을 했습니다. 특히 복음서를 읽을 때는 제가 2000년 전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직접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듯 한 느낌에 사로 잡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성경이 너무나 실감 있게 온몸으로 다가오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권해드리고 싶은 책은 <십자가의 성요한>과 <사막교부들의 금언>이라는 책입니다. 그리고 현대의 대표적인 영성가인 토머스 머튼 그리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책도 큰 울림을 줍니다. 복음주의자인 유진 피터슨의 책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큰 경향을 받은 이는 아빌라의 <테레사>입니다. <현대의 마더 테레사>라는 책도 참 좋습니다. 그리고 이미 널리 알려진 헨리 나우웬의 책도 권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본회퍼 목사님의 <나를 따르라>는 정말 압권 중의 압권입니다. 이 렉치오 디비나는 하나님과의 진지한 관계형성을 위한 기도이며, 내면적인 영성을 형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독서와 기도가 수렴되어 통합되는 것입니다. 독서와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과 만나게 하고 해방하게 하며, 하나님의 자유로운 능력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혜에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하고 성령께서 자유롭게 우리를 변화시키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 부르짖는 걸 멈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잡생각만 많이 날 거 같은데, 실제로 어떻던가요? 처음에는 계속해서 밀려오는 잡념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관상기도에 뛰어 들기보다는 렌즈가 희미하다가 차츰 선명하게 초점을 맞추듯이 성경을 읽고 감동받는 말씀을 정해서 묵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 단어를 선택해서 집중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것조차 뛰어 넘어서 무의식의 영역에서 하나님께 맡기려 합니다. 저는 아직 무의식의 영역까지 하나님께 맡기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넓은 세계를, 더 깊은 신앙의 지평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을 생각하면 정말 흥분되고 의욕이 넘치게 됩니다. ▶ 혹시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하게 될 가능성도 많을 거 같은데요? 맞습니다. 따라서 렉치오 디비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영성의 대가들의 독서방법을 통해서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온 생각이 하나님 뜻에 맞는지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확인해야 하고 그리고 또한 모든 내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멘토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김기석 목사님같이 제가 모든 면에서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멘토로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이 인터뷰도 목사님과 먼저 기도하고 상의하고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멘토를 통해서 반드시 자문을 받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빠지게 되면 대단히 위험하고 오히려 관상기도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 ‘관상 기도’가 박운양 선생의 실제 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한데요, 직접 체험했던 사례 몇 가지를 자세하게 소개해 주십시오. 방언이 터지거나하는 신비한 체험은 죄송하지만 전혀 없습니다. 다만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거의 매순간 하나님의 임재의 틀 안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부담이 아니라 엄마 품안의 아기처럼 편안한 따스한 온화한 부드러운 느낌으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감리교에서 대표적인 K교회의 K 목사님을 저도 존경합니다. 그래서 신학대에 오기 전에 그 분이 감독회장으로 있을 때는 집으로 매주 보내졌던 그 분의 <불기둥>이라는 소책자에 실린 설교를 읽고서 많은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분은 그 K교회에서는 인정을 받는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담임자가 성적인 추문을 일으키고 재정 비리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교회에 계속 남아서 목회를 할 수 있느냐’ 는 것이지요. 사실 제가 <뉴스앤조이>에 올렸던 글도 그 고민의 산물이었습니다. 전 그 K목사님이 그렇게 되신 것은 하나님 임재연습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만일 그분이 관상기도를 익숙하게 드릴 수 있었다면 전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관상기도를 하는 도중에 제일 힘든 것이 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입니다 .아직 저도 37세 밖에 안 된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이성(異性)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관상기도를 하면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많은 에너지를 기도를 하면서 얻게 된 깨달음으로 삶 속에서의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고 집중하는데 쓰여 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상기도가 익숙하지 못했을 때는 냄비처럼 한때 반짝해서 일을 벌였다가 책임지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말실수가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말실수 때문에 얼마나 곤혹스런 상황을 많이 당하게 됩니까? 그리고 의욕적으로 열정이 생각게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왜 저들은 나처럼 따라 주지 않을까? 하고 그들을 재촉하거나 다그치기 쉽습니다. 한마디로 조급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는 아니지만 이제는 하나님 임재연습을 통해서 많이 자유해 졌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조급함도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도 그렇게 저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때그때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헤아리고 기도하고 생각을 주시면 고민하고 멘토 김기석 목사님과 상의하고 그리고 실천합니다. 물론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수는 대부분 극복할 수 있는 실수이지 치명적인 실수는 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1월에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기도하던 중에 파키스탄 지진 때문에 피해를 당한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추위 때문에 80만에서 100만에 가까운 주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서 모금을 하기로 결심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 교수님들 직원 분들부터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모금도중에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총신대를 졸업하신 목사님께서 저를 보시고 ‘어떻게 기독교를 향해서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을 믿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느냐’고 항의를 하셨습니다. 이 분은 감리교신학대학교에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웃지 못 할 소동이 있었습니다. ‘편협한 신학과 지평 속에서 있다 보면 이렇게 안타까운 일들을 벌이는 구나’라고 불쌍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괴로웠으나 관상기도를 통해서 많이 극복하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관상기도와 실행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꿈꾸어 왔던 야학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수 도 있겠구나’하는 확신을 갖게 되어 계속 기도하면서 준비 했습니다. 그리고 기획안을 감리교신학대학교 기획처장이신 장왕씩 교수님께 전해드렸고 기획위원회 교수 학생 직원 전체평의회를 통과해서 학교에서 밤에는 강의가 없으니까 그 빈 강의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야학이면 어떤 야학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야학의 모습일까’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관점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확신하게 되어서 ‘녹색살림’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파감리교회 성가대분들과 함께 기도하며 상의하면서 총무이신 조항범 집사님께서 기꺼이 로고와 포스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싸이월드 일촌 등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비밀이야’ 기능을 통해서 일촌들의 기도제목을 받고 새벽기도 때마다 기도하고 다른 일촌들도 저를 위해서 무엇보다 녹색살림야학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30여명의 교사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5월 15일 개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구청에서 발행하는 서대문지역신문에 학생모집 광고가 실렸으며 곧 서대문지역 케이블TV에서 자막으로 실리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교사들이 나서서 벽보작업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기독교방송을 사랑하시는 청취자 여러분들께 부탁드립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돈이 없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공부하시다가 도중에 학업을 포기하셔서 자신의 삶을 발전시킬 기회를 차단당하셔서 큰 아픔을 겪고 계시는 분이나 그런 분을 알고 계시는 청취자께서는 꼭 주저마시고 녹색살림야간학교로 연락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한글과 산수교육의 중심의 초등학교 과정, 중학교 졸업검정고시과정 고등학교졸업 검정고시 과정 모두 일 년 과정입니다. 모두 무료로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비록 대부분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으로 짜인 젊은 학생들이 가르치게 되지만 열정과 패기가 모두 넘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열심히 쉽고 친절하게 길잡이 역할을 해드릴 것입니다. 주저 마시고 연락해주시고 또 무엇보다도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녹색살림야간학교가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모습의 야학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부르짖는 기도’에만 익숙해 있는 크리스천들이 ‘관상 기도’를 하게 된다면, 한국교회 전체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먼저 개인적으론 몸이 편안해 집니다. 관상기도를 하면서 몸기도를 병행하면 더욱더 효과가 큽니다. 우리의 내면은 마르다처럼 늘 분주합니다. 의식조차도 침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런 의식조차도 침묵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진정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비워지는 느낌이랄까요? 교회 전체적으로는 신앙의 근본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18세기 존 웨슬리 목사님이 주도하셨던 영국을 변화시켰던 감리교운동에 버금가는 윤리적인 회복이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사탄의 세력은 집요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뉴스앤조이>에 올렸던 제 댓글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던 것은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관상기도를 통해서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신앙이 성숙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관상기도가 대세가 되어 일상화가 되면 반드시 윤리적인 성숙을 가져 올 것입니다. 그리고 관상기도는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을 온화한 성령의 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복음주의든 자유주의든 각각의 입장 속에서 견지해야 할 것과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정확하게 깨달아서 혼합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수렴되는 모델들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감리교신학대학교 내에서부터 이런 조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뉘었던 학생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기도하고 각자의 지평 속에서 제시할 수 있는 장점들과 단점들에 눈을 떠가고 있습니다. 전 결단코 우리 감리교회부터 적어도 10년 안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는 개혁과 감싸 안음의 흐름이 반드시 등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우리가 겸허하게 하나님께 관상기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 그렇다면 ‘부르짖는 기도’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청원기도를 드릴 때는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아뢸 때는 부르짖는 기도를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한국교회가 가꾸고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그러나 ‘주여 삼창’으로 상징되는 이 기도만이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결단코 곤란합니다. 관상기도 꼭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크리스천 저널> 청취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한 말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 말을 좀 더 깊이 들어 가보면 많은 인 사이트를 얻게 됩니다. 과연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생각이 나에게 임하는 것은 아닌가 정확하게 물어야 합니다. 저는 생각의 주체가 저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큰 깨침을 얻으면 관상기도가 일상화가 되어서 사도바울께서 권면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상황에 유불리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관상기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잡념 때문에 힘겨움을 겪다가 지쳐서 포기하기도 하고,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6개월 이상을 두고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하신 말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관상기도를 통해서 이렇게 풀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연습이 훈련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말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반드시 이 길을 가야만 저는 한국교회가 하나님과의 접촉 불량의 상태에서 소음만을 울리는 스피커의 상태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온전한 접속의 상태로 진입해서 자유함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살아있는 교회로 거듭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살면서 수없이 많은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이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상기도에 익숙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관상기도를 통해서 임재 하셔서 우리를 예민한 감수성과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끕니다. 예수께서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이들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민한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관상기도에 정통하게 되면 들리지 않던 것이 또렷하게 들리게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일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문제해결능력이 탁월하게 향상되게 됩니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서 위대한 비전을 갖도록 이끄십니다. 이것은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철저히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적인 상상력입니다. 이 두 가지 도구를 통해서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해서 이웃의 아픔에 민감하게 되고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결단코 아닙니다. 관상기도는 가랑비에 옷 젖듯 아주 은근하게 다가옵니다. 소리 없는 변화 진정한 변혁입니다. 현재의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되시는 청취자가 계시다면 꼭 관상기도의 세계로 한걸음 다가가 보실 것을 권면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운양 / 녹색살림야간학교 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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