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특이한 성경이다. 게다가 에스더가 표면에 등장하는 배경이 묘하다. 에스더 1장은 기존의 왕후 와스디가 폐위되는 이야기를 통해 에스더가 등장할 여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데, 그 장면의 묘사를 통해 영적 교훈을 얻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부조리한 권력의 흐름 덕에 운 좋게 떠오른 여자란 생각마저 든다. Rising of Esther???
본문을 좀 더 살펴보자. 에스더의 첫 머리는 아하수에로왕과 왕국의 부강함에 대해 장황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어로는 ‘크사야르사’, 그리스어로는 ‘크세르크세스(Xerxes)’다. 영화 300에 금은보화를 칭칭 감은 변태적인, 그러나 관대한 외모로 등장한 그 인물이다.

실제로 아하수에로는 평생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왔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하수에로는 풍류남아로 등장한다. 공동번역으로 읽어보면 그 맛이 각별하다.
2 아하스에로스는 수도 수사 성에서 왕위에 올라,
3 나라를 다스린 지 삼 년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베풀고 고관 대작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와 메대의 장군과 귀족과 각 지방 수령들을 초대하였다.
4 이리하여 왕은 백팔십 일이라는 오랜 시일에 걸쳐 왕실의 거창한 부귀와 눈부신 영화를 자랑하였다.
5 이 기간이 끝나자 왕은 다시 궁궐 안뜰 정원에다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모든 수사 성민을 가리지 않고 초대하였다.
6 정원에는 하얀 실과 자줏빛 털실로 짠 휘장이 쳐져 있었다. 그 휘장은 흰 대리석 기둥에 달린 은고리에 모시실과 붉은 털실로 꼰 끈으로 매어져 있었고, 반암석과 흰 대리석과 조개껍질과 갖가지 보석들을 박아 넣은 바닥에는 금은으로 만든 평상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7 갖가지 모양으로 된 금술잔이 나왔고, 왕이 내리는 술은 한이 없었다.
8 그러나 술을 마셔도 법도를 따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왕의 분부가 있어 저마다 원하는 대로 마시게 하였다.
지배계층들과 한껏 즐긴 후(백팔십일이나… 반년씩이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수사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즐겼다(5v). 이 파티에서는 갖가지 모양의 금술잔이 사용되었고 한이 없는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7v).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억지로 마시게 하지 말라는 왕의 분부(8v)!! 이 얼마나 멋진 풍류남아의 모습인가?!
이어지는 대목은 마초의 향기까지 물씬 풍기고 있다. 얼큰하게 취한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나머지 왕후를 단장시켜 데려오라고 내시들에게 명령했다. 일곱명의 내시들에게 명령했다고 기록되어있는데(10v) 한꺼번에 일곱명이 우루루 몰려가서 왕의 명령을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한 번에 한 명씩 일곱 번에 걸쳐 찾아간 것인지는 명백하게 알도리가 없다. 물론 양쪽 다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왕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여성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당시 오리엔트의 문화에서 왕후는 왕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노는 걸로 보여요? 나도 지금 일 하고 있다구욧!!”라고 응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왕후도 부인내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9v). 얼마 전 방영이 끝난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통해 부인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조직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슬쩍 엿보았기 때문에 이 부분도 그냥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전차로 아하수에로는 격분했다. 이 일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느냐고 묻는데 당시의 관례를 따라 법률 자문위원들에게 물었다(13v). 그리고 그들은 왕후의 잘못은 단지 왕과 왕후의 관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왕후의 저항(?) 이야기를 들은 부녀자들이 너도나도 왕후를 흉내 내기 시작하면 사내들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니 다시는 왕후 와스디가 어전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왕이 부르기전에 왕 앞에 나가는 것이 큰 금기임을 암시하는 에스더의 말(4:16)과 새로 왕후를 뽑으라고 권하는 신하들의 이야기(2:4)를 통해 볼 때 사실상의 왕후 폐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왕의 권위, 가장의 권위에 손상을 입어서 열 받은 거였을까? 여튼 왕은 왕후를 폐비시켰다. 남자 중의 남자 아하수에로 왕은 이 일을 음지에서 은근슬쩍 처리하지 않고, <가정은 마땅히 남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의 칙서를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말로 전국에 써서 돌렸다(22v). 에스더 1장 1절이 묘사하는 바에 따르자면 그 소식이 퍼진 범위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였다. “그깟 일로 동네방네 떠들면서 왕비를 폐위시킨다니 너무 속 좁은 처사 아니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우리 역사에도 제헌왕후(폐비윤씨, 연산군의 생모)가 지엄하신 주상 전하(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었다는 이유로 폐비된 전례가 있었다.
1장을 읽고나니 기분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물론 지금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보는 것에 큰 무리가 따른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치졸하다. ‘여성’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면 ‘약자’로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성경의 전통은 고아와 과부를 약자 중의 약자로 묘사하고 있으니까 과부 아닌 과부로 평생을 살아가야했을 와스디 왕후는 당대 페르시아의 약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치졸한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에스더가 왕후가 될 수 있었고 유대민족이 몰살의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유진 피터슨의 「다시 일어서는 목회」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에스더를 낭독한다. 절망적 상황, 적들의 치졸한 음해에 익숙한 유대민족에게 에스더의 이야기는 큰 엑스타시를 주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쉽게 결론짓자면 <절망적 한계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니 소망을 포기하지 말자> 정도의 교훈으로 이야기를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찜찜하다. 자기편에게 베풀 때는 통 큰 보스, 자기 소유인 왕후(오해 마시라! 당시의 가치관이 그렇다는 것이니)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허영심과 자기 권위가 무시당했을 때는 처절하게 복수하는 악랄함을 가진 남자.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이런 왕을 등에 업고 출세했다.
권력과 결탁한 종교가 보여주는 목불인견의 꼬라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2009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내게 에스더는 과연 어떤 텍스트일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에스더는 설교하기에 어려운 성경이다.
본문을 좀 더 살펴보자. 에스더의 첫 머리는 아하수에로왕과 왕국의 부강함에 대해 장황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어로는 ‘크사야르사’, 그리스어로는 ‘크세르크세스(Xerxes)’다. 영화 300에 금은보화를 칭칭 감은 변태적인, 그러나 관대한 외모로 등장한 그 인물이다.

실제로 아하수에로는 평생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치러왔다. 그런데 본문에서 아하수에로는 풍류남아로 등장한다. 공동번역으로 읽어보면 그 맛이 각별하다.
2 아하스에로스는 수도 수사 성에서 왕위에 올라,
3 나라를 다스린 지 삼 년째 되던 해에, 큰 잔치를 베풀고 고관 대작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와 메대의 장군과 귀족과 각 지방 수령들을 초대하였다.
4 이리하여 왕은 백팔십 일이라는 오랜 시일에 걸쳐 왕실의 거창한 부귀와 눈부신 영화를 자랑하였다.
5 이 기간이 끝나자 왕은 다시 궁궐 안뜰 정원에다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모든 수사 성민을 가리지 않고 초대하였다.
6 정원에는 하얀 실과 자줏빛 털실로 짠 휘장이 쳐져 있었다. 그 휘장은 흰 대리석 기둥에 달린 은고리에 모시실과 붉은 털실로 꼰 끈으로 매어져 있었고, 반암석과 흰 대리석과 조개껍질과 갖가지 보석들을 박아 넣은 바닥에는 금은으로 만든 평상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7 갖가지 모양으로 된 금술잔이 나왔고, 왕이 내리는 술은 한이 없었다.
8 그러나 술을 마셔도 법도를 따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왕의 분부가 있어 저마다 원하는 대로 마시게 하였다.
지배계층들과 한껏 즐긴 후(백팔십일이나… 반년씩이나??),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수사성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즐겼다(5v). 이 파티에서는 갖가지 모양의 금술잔이 사용되었고 한이 없는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7v).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억지로 마시게 하지 말라는 왕의 분부(8v)!! 이 얼마나 멋진 풍류남아의 모습인가?!
이어지는 대목은 마초의 향기까지 물씬 풍기고 있다. 얼큰하게 취한 왕은 왕후의 아름다움을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나머지 왕후를 단장시켜 데려오라고 내시들에게 명령했다. 일곱명의 내시들에게 명령했다고 기록되어있는데(10v) 한꺼번에 일곱명이 우루루 몰려가서 왕의 명령을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한 번에 한 명씩 일곱 번에 걸쳐 찾아간 것인지는 명백하게 알도리가 없다. 물론 양쪽 다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왕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여성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일이지만, 당시 오리엔트의 문화에서 왕후는 왕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노는 걸로 보여요? 나도 지금 일 하고 있다구욧!!”라고 응답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왕후도 부인내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이고 있는 중이었으니까(9v). 얼마 전 방영이 끝난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통해 부인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조직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슬쩍 엿보았기 때문에 이 부분도 그냥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전차로 아하수에로는 격분했다. 이 일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겠느냐고 묻는데 당시의 관례를 따라 법률 자문위원들에게 물었다(13v). 그리고 그들은 왕후의 잘못은 단지 왕과 왕후의 관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왕후의 저항(?) 이야기를 들은 부녀자들이 너도나도 왕후를 흉내 내기 시작하면 사내들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니 다시는 왕후 와스디가 어전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왕이 부르기전에 왕 앞에 나가는 것이 큰 금기임을 암시하는 에스더의 말(4:16)과 새로 왕후를 뽑으라고 권하는 신하들의 이야기(2:4)를 통해 볼 때 사실상의 왕후 폐위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왕의 권위, 가장의 권위에 손상을 입어서 열 받은 거였을까? 여튼 왕은 왕후를 폐비시켰다. 남자 중의 남자 아하수에로 왕은 이 일을 음지에서 은근슬쩍 처리하지 않고, <가정은 마땅히 남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의 칙서를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말로 전국에 써서 돌렸다(22v). 에스더 1장 1절이 묘사하는 바에 따르자면 그 소식이 퍼진 범위는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였다. “그깟 일로 동네방네 떠들면서 왕비를 폐위시킨다니 너무 속 좁은 처사 아니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우리 역사에도 제헌왕후(폐비윤씨, 연산군의 생모)가 지엄하신 주상 전하(성종)의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었다는 이유로 폐비된 전례가 있었다.
1장을 읽고나니 기분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물론 지금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보는 것에 큰 무리가 따른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너무 (여성에게) 폭력적이고 치졸하다. ‘여성’이라는 표현이 불편하다면 ‘약자’로 바꾸어도 괜찮을 것이다. 성경의 전통은 고아와 과부를 약자 중의 약자로 묘사하고 있으니까 과부 아닌 과부로 평생을 살아가야했을 와스디 왕후는 당대 페르시아의 약자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치졸한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에스더가 왕후가 될 수 있었고 유대민족이 몰살의 위기에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유진 피터슨의 「다시 일어서는 목회」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에스더를 낭독한다. 절망적 상황, 적들의 치졸한 음해에 익숙한 유대민족에게 에스더의 이야기는 큰 엑스타시를 주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쉽게 결론짓자면 <절망적 한계상황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니 소망을 포기하지 말자> 정도의 교훈으로 이야기를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뭔가 찜찜하다. 자기편에게 베풀 때는 통 큰 보스, 자기 소유인 왕후(오해 마시라! 당시의 가치관이 그렇다는 것이니)의 미모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허영심과 자기 권위가 무시당했을 때는 처절하게 복수하는 악랄함을 가진 남자.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이런 왕을 등에 업고 출세했다.
권력과 결탁한 종교가 보여주는 목불인견의 꼬라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2009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내게 에스더는 과연 어떤 텍스트일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에스더는 설교하기에 어려운 성경이다.




덧글
烏有 2009/08/09 17:37 # 답글
확실히 읽고 받아들이기 어렵더라고요.그래서인지 에스더서로 교제할때면 순장들은 '왜인지 잘 모른다'로 넘어가긴 하더군요.
길벗 2009/08/19 10:31 #
책을 좀 찾아보니 이런 점 때문에 고민한 선배들이 많더군요.마틴 루터 역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