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얼마나 가슴 벅찬 단어인가?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은 무언가에 구속된 상태를 전제한다.
갈라디아서는 율법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복음이 확장되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유대교에서 분리되지 않았던 예수 운동, 혹은 예수파 유대교를 믿는 자들에게 율법 준수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이것은 2009년의 한국 사람에게도 문제인가?
삼겹살이나 장어 먹는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고, 그 이유로 교회가 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은적이 없다.
사도 바울이 제시하는 율법에서의 자유와 오늘 나의 고민 사이에 중요한 공유 지점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회. 새로운 종교...
율법은 그동안 복음을 품고 있던 문화적 틀이었다.
오늘날의 복음주의와 복음주의 문화를 구분해야 한다(마이클 프로스트, [새로운 교회가 온다]).
금주금초. 주일성수. 십일조... 복음인가, 문화인가?
갈라디아서를 차근히 읽고 연구해보아야'만' 하겠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새로운 교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막 솟아오른다.




덧글
책벌레 2009/07/10 21:33 # 답글
묵상글들을 잘 읽었습니다. 성서와 전통에 뿌리를 내린 맑고 튼튼한 영성이 느껴져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