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클럽에 모님이 쓰신 글에 대한 답글로 올렸던 글
다시 읽어보니...
굳이 기독교 세계관 공부하려고 들지 마라는 간단한 이야기를 이리 길게 할 수 있구나는 생각에 한숨...ㅡㅡ;;
이왕이면 지난 몇년간 복음주의권을 뜨겁게 달구었던 <기세(기독교 세계관) 무용론>에 대해 좀 더 소개해줬으면 좋았을텐데.. ^^
몇년전부터 젊은 복음주의자(...라곤 하지만 우리보단 늙은... ㅎㅎ)들이 기존의 기세가 기독교 전체의 세계관이라기보단 ‘개혁주의 세계관’1)이라고 전제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왔잖아.
근데 우리는 ‘개혁주의’에 대해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작 개혁주의가 뭔지에 대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구.
개혁주의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으면 자연스레 ‘개혁주의적 기독교 세계관’이 갖는 장점과 한계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을것 같네.
우선 내가 아는데로 간단히 적어볼테니 읽어보고 부족하거나 틀린게 있으면 답글로 달아줘. ^.~
1. 개혁주의???
흔히 개혁주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합리한 현실을 개혁하는 신앙사조로 생각하기 쉽다.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전혀 다른 말은 아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을 개혁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개혁주의란 ‘종교개혁주의’를 이르는 말로, 종교개혁의 정신과 신학을 이어받아 유지․보수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종교개혁사상 내부에도 다양한 흐름이 있는데 개혁주의는 그중 칼빈(칼뱅이라고도 함)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칼빈의 사상은 단순히 이론으로만 남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 실험되었는데 그 장소는 스위스 제네바였다. 칼빈은 목사였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윤리를 실천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도 가지고 있었다.2)
제네바에서 실험된 칼빈사상의 핵심은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접촉하게 되는 몇 가지 명제의 뿌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범죄, 예수님의 구속을 통한 회복을 지향하는 체계를 말하는데, 여기서 바로 <창조-타락-구속>의 틀이 나온다.
제네바의 칼빈은, 본래 하나님이 선한 의도로 아름답게 만드셨으나(창조) 인간의 범죄로 인해 오염된(타락) 정치․경제․문화 모든 영역을 회복시켜야 할 것(구속)을 주장하고 제네바시를 움직여갔다.3)
이게 듣기는 참 좋은 말인데 참 아이러니한게 그런 이상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반대파들을 죽이는 피의 숙청이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가장 부각된 사람들은 중산층들이었다. 소위 브루주아라는 사람들이 제네바의 주류가 된거지.
이후로 칼빈사상은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주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교회 역시 그런 경로로 칼빈주의(혹은 개혁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기세 역시 (‘창조-타락-구속’의 틀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주의 세계관이 주류가 되었다.
2. 개혁주의 세계관에 시비걸기
한때는 나도 기세야 말로 삶과 신앙의 분리를 해결해줄 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하고 기세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살두살 나이먹어갈수록 기세의 <창-타-구> 프레임으로는 설명 안되는 부분이 삶에서 늘어갔다. 기세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기세의 위험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타락한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복시켜야 한다는 뜨거운 마음은 그 자체로 매우 순수하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하다.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평가절하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런 마음을 품은 사람이 은연중 새벗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마음을 품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어서 빨리 나와 같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저 사람을 저 아래편 사망의 그늘에서 건져 올려야 한다는 인식은 새벗들에게 굉장한 불쾌감을 준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통해 개혁주의 기세는 세상을 내려보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기세의 관점에서 세상은 전적으로 타락한 곳이기에 배울 것이 없으며 우리가 신속히 침투해 들어가서 변화시켜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발 딛고 살게 하신 세상은 타락하고 부패하였지만 이미 그 곳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다. 달라스 윌라드가 ‘하나님 충만한 세상’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유진 피터슨이 ‘현실, 하나님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것도 다 그런 깨달음 때문일 것이다.
암튼 개혁주의 기세... 위험한 사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IVP에서 주로 나오는 책의 상당수는 기존의 개혁주의 기세와 거리가 먼 것이 많다. IVF 간사님들도 예전처럼 세계관을 강조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기세의 한계는 이미 널리 지적된 것이기 때문이다.
유독 기세를 강조하는 집단이 있다면 어디일까? 감히 특정 집단을 꼬집자면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설익은 예비역 리더 집단(헉헉 ㅡㅡ;;)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배웠던 기세, PBS, MBTI 등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PBS할 줄 모르면 IVF도 아니라고, 세계관에 대해 한 마디 할 줄 모르면 IVF도 아니라고, MBTI나 애니어그램 모르면 관계 맺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집단들이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관 몰라도 된다!
PBS 못해도 된다!
그래도 IVF 맞다!
자꾸 지나치게 그런 것들 강조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그 사람은 도도한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변모해온 기독교 영성의 흐름에 귀기울이지 않은채, 자신이 배웠고 익숙하게 사용하는 도구에만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부디 알아서 가려듣기를...) 그런 이야기에 이끌려다니면 크게 후회할 날이 온다. 언젠가도 아니다. 조만간 후회한다.
3. 그렇다면?
“기독교 세계관 몰라도 된다!” 라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야호! 골치 아프게 그런거 공부안해도 된다!”는 환호와,
“그래도 기독교 세계관 덕분에 생각하는 신앙, 삶과 신앙의 합일에 대해서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었는데 그걸 포기하면 앞으론 어쩌란 말이냐?”라는 우려섞인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난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이야기야 내가 말 안해도 다들 알테고... 그동안 기세가 해주었던 긍정적 기능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져가고 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세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 중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편의주의’다. 각 사람의 삶에 밀착된, 그 사람에게 맞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처럼 어느 정도 정리된 명제적(propositional)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이거 공부하고, 그대로 실천만 하면 되는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몇 가지 구호나 명제를 절대적 진리로 신봉하고 살아갈만큼 기독교의 가르침이 얄팍하지도 않다. 성경은 <창조-타락-구속> 세 단계로 쉽게 압축될만큼 얄팍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삶의 풍성한 영역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당연히 성경이 말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돕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각 사람에게 맞는 ‘정답’을 제시해준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기독교 세계관 책을 내려놓고 유진 피터슨의 책을 읽는다. 그의 책에는 답이 없다. 명제적으로 진술된 결론이 없다. 함께 걷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내 좋은 벗 유진 피터슨은 ‘현실이 이러이러하니 너는 이래저래하거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냥 함께 걸어주고 대화의 상대가 되어준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그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세계관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권하고 싶다. world-view(세계관)를 배우는 것은 여행에 앞서 지도를 익히는 것과 비슷하다. 좋은 지도가 있다면 참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 2007년의 이십대가 앞으로 방문하게 될 여행지를 미리 조사하는데는 기존의 지도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형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으니까...
지도를 내려놓고 모험가가 되는건 어떨까? 세계관을 학습하고 그 테두리 안에 머무는 삶을 내려놓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삶을 선택하는건 어떨까?
4. 세 줄 요약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다. 안 읽고 스크롤 쭉 내렸을 사람을 위해 세 줄 요약 시도해본다. ^^
1.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창조-타락-구속>의 기독교 세계관은 칼빈의 개혁주의 세계관이다.
2. (개혁주의에 기초한) 기독교 세계관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별로 권할 만한 일이 아니다.
3. 세계관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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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럼 이건 줄여서 ‘개세’??? ㅡㅡ;;
2) 한국에서 일어나는 ‘성시화 운동’은 대부분 칼빈 시대의 제네바를 모델로 하고 있다. 한국 성시화 운동의 창시자 김준곤 목사가 <성시화 운동의 철학과 비전>이라는 글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음
3) 그 와중에 너무 엄격한 기독교 윤리를 강조하느라 한 번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도 거쳤다
4) 대표적 역기능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트라우마(정서적 외상)을 입힌다는 것인데... 이건 이 글에선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다. 경훈이 니가 좀 자세히 써봐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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